반응형
사는 일
- 나태주 -
1
오늘도 하루 잘 살았다.
곱은 길은 굽게 가고
곧은 길은 곧게 가고
막판에는 나를 싣고
가기로 되어 있는 차가
제시간보다 일찍 떠나는 바람에
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두어 시간
땀 흘리며 걷기도 했다.
그러나 그것도 나쁘지 아니했다
걷지 않아도 좋을 길을 걸었으므로
만나지 못했을 뻔했던 싱그러운
바람도 만나고 수풀 사이
빨갛게 익은 멍석딸기도 만나고
해 저문 개울가 고기비늘 찍으러 온 물총새
물총새, 쪽빛도 보았으므로.
이제 날 저물려고 한다
길바닥을 떠돌던 바람도 잠잠해졌고
새들도 머리를 숲으로 돌렸다
오늘도 하루 나는 이렇게
잘 살았다.
2
세상에 나를 던져보기로 한다
한 시간이나 두 시간
퇴근버스를 놓친 날 아예
다음 차 기다리는 일을 포기해버리고
길바닥에 나를 놓아버리기로 한다
누가 나를 주워가줄 것인가
만약 주워가준다면 얼마나 내가
나의 길을 줄였을 때
주워가줄 것인가
한 시간이나 두 시간
시험 삼아 나는 세상 한복판에
나를 던져보기로 한다
나는 달리는 차들이 피해가는
길바닥의 작은 돌멩이.
- 나태주, <너도 그렇다>시집 중에서 -
다시는 오지 않을 오늘과 다시 갈 수 없는 이 길이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니더라도 그곳에서 만나는 긍정적인 부분들을 찾아내며 나의 마음을 긍적적이고 즐겁게 마무리 하시길 바랍니다.
반응형
'좋은글' 카테고리의 다른 글
인생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지 않을 것 (0) | 2021.01.02 |
---|---|
삶은 달리기 경주가 아니다. <더 느리게 춤추라> (0) | 2020.12.24 |
어떻게 살 것인가. <아닌 것> (0) | 2020.12.17 |
가장 아름다운 인생 갈무리 (0) | 2020.08.19 |
독자의 시 / 민들레 (6) | 2020.03.12 |